농사가 바로 명분입니다

by digipine posted Nov 03,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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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가 바로 명분입니다 - 농촌 들녘에서 만난 사람 

 

 


경기도 양평군에 사는 초보 농사꾼. 흔히 양수리라고 알려져 있는, 남한강 북한강이 만나 한 물줄기가 되는 두물머리. 이 시간에도 뻘뻘 땀 흘리고 있을 그이는 아마 기억을 못하겠지만, 나는 아직도 그 사람 최요왕 선배를 처음 만난 날을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환경농업단체연합회라고 생산자-소비자-유통조직-연구단체 같은 환경 농업 관련 단체를 모두 아우르는 민간 연대 조직이 있다. 해마다 한 번 전국 각지의 친환경농산물을 한데 모으는 품평회 자리에서 선배를 처음 만났다. 첫 인상은 분위기가 아무래도 농사꾼은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고 단체 활동가 스타일도 아니다. 외모는 산적 두목 같은 강골인데 태도는 겸손하고 사투리는 한없이 친근하다. 아무튼 4년 전 그날 이후 형님 동생 하면서 여러 자리에서 함께했던 사람이 느닷없이 양평에서 닭을 키운다고 사라져 안 보이더니, 어느덧 멋진 농사꾼 티를 풀풀 풍기면서 내 기를 죽인다. 아무튼 너무 반가웠다. 


“형, 여기 두물머리에 왔는데, 어디 계세요?” “그래? 지금은 거기 없는데? 여기 부용리인데, 이리 올 수 있겠어?” “네, 그럴게요. 이곳 지리는 좀 아니까 걱정 마시고요. 근데 뭐 하고 계셔요?” “논에 물을 좀 대려고 준비 중이야. 암튼 어서 와.” 논에 물 대는 일이야 그저 물꼬를 트는 일이라면 간단하다. 여기 양평이야 거대한 한강이 있는데 뭐 물 대는 일이 어려우랴. 그런데 생각해 보니 한편으로는 불안하다. 대개 귀농자들에게 허락되는 논이란 것이 일하기 쉽고 물 대기 좋은 법이 없다. 


아니나 다를까. 최 선배가 올해 처음 얻은 논 여섯 마지기는 이 동네에는 드문 천수답이다. 게다가 하도 논이 질어서 트랙터가 두 대나 연거푸 빠진 적이 있을 정도다. 남들은 다 모내기를 끝냈건만, 오늘에야 이웃 농부 트랙터로 로타리(땅을 평평하게 고르는 작업)를 치고 물을 대려고 한다. 게을러서가 아니라 기계가 없으니 트랙터 주인의 시간에 맞추느라 그렇다. 작업이 끝나면 바로 물을 채워야 하는데, 바로 밑의 관정(우물)을 쓰려고 했더니 아래 논 주인이 그 물을 쓰면 자기 논에 물이 빠질 수도 있다고 말을 한다. 행여 남의 농사에 피해 주는 일이 있으면 큰일이다. 결국 3백 미터 아래의 농수로에 양수기를 설치해서 호스로 끌어 오는 작업을 해야 한다. “형, 제가 이런 건 또 처음 보네요.” “뭐 별 수 있겠어? 좌우간 네가 와서 편하겠다. 안 그러면 혼자 왔다 갔다 몇 번을 해야 하거든.” 도움이 된다니 다행이다. 내가 뭐 특별한 재주가 있어서가 아니다. 농사일은 늘 그렇게 함께할 사람이 필요하다. 


그런데 오늘 이게 왜 쉽지 않은 일이냐 하면, 도로 아래로 파묻은 관을 기어서 호스를 끌고 올라가야 하는 작업이 있어서 그렇다. 영화 <쇼생크 탈출>을 기억하는가? 주인공 앤디는 교도소를 탈출하면서 하수관 400미터를 기어간다. 여기 수로관은 30여 미터고 다행히 기어가지는 않아도 되지만, 기다시피 쭈그려서 호스를 끌어가야 한다. 수로 반대편에서 장비를 들고 기다리는 나는 안쓰러움에 조심하시라는 둥 말이나 거는 일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아무튼 천만다행 우여곡절 끝에 물은 제법 콸콸 나온다. 우리네 희망도 그렇게 어렵게 땅을 기다 보면 콸콸 행복으로 쏟아질까? 


최요왕 선배가 농사짓는 이곳 팔당은 우리가 학교에서 배웠던 이른바 근교농업 지역이다. 쌈 채소나 딸기 따위를 하우스에서 생산하고, 가까운 서울 소비자들이 먹는다. 특별한 것은 팔당은 상수원 보호지역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친환경농업이 권장 사항을 넘어 필수 사항이 되고 있다는 것인데, 그 한가운데에 ‘팔당생명살림’이라는 민간 조직이 자리를 잡고 있다. 잠깐 짬을 내 슈퍼 앞에서 선배와 막걸리 한 모금을 나누고 있는 동안에 토박이 농사꾼들 4명이 오가면서 농사 정보를 들려준다. 모두 같은 생명살림 생산자 회원이며, 농사로는 까마득한 선배들이며, 함께 축구하고 족구하고 투쟁하며 공부도 하는 동지들이다. 강력한 친화력을 가진 순천 태생 최 선배는 던지는 말과 사귐에 거침이 없다. 왜 그런 것 있지 않나? 그 누구도 미워할 수 없는 전라도 사투리 배인 땅의 사람들 특유의 말투 말이다. 다음 선배가 한 말은 최대한 전라도 사투리로 상상해서 들으시면 더 좋겠다. 


“형이 여기 온 지도 벌써 한참 되었네요.” “단체 일을 하다가 알게 된 유정란 농장에 머슴살이 들어온 게 2004년 봄이니까, 그게 오래된 건가?” “형 농사를 짓기 시작한 건 올해가 처음인 거죠? 가족도 다 이사하신 거구요?” “응. 작년 겨울에 장인 장모까지 다 이사했는데, 큰애는 초등학교 1학년 들어갔고, 마누라는 영등포로 출퇴근하느라 좀 힘들어. 내가 아침마다 동서울까지 바래다주고, 다시 와서는 하우스에서 작업해서 채소 납품하고, 아침밥 먹고는 마저 하우스 일을 하고 공동 퇴비장 일도 하고 논일도 하고, 동네 분들과 술도 먹어야 하고 축구도 해야하고, 암튼 바쁘지.” “하루가 금방 가겠네요. 농사 규모가 얼마나 되는 거죠?” “하우스가 10동인데 천 평이 넘지. 얼갈이배추가 주작목이고, 케일하고 컬리플라워 같은 쌈 채소를 돌려 심고 있는 중이야. 처음 듣지? 브로콜리 6촌쯤 돼.” “아니, 그 정도 면적이면 욕심 아닌가? 그래도 채소를 낼 곳이 확실히 있으니 좀 낫겠지만.” “여기서야 그 정도 하는 건 많이 하는 것도 아니지. 사실 주문하고 수확하는 일이 늘 맞아 떨어지는 것도 아니라서 늘 안정적인 것만은 아니야.” “텃세 같은 건 없었어요? 여기 팔당은 자리 잡기가 특히 쉽지 않다고 하던데.” “몸을 낮추면 되는 거지 뭐. 하우스 반은 한강 하천부지 국유지를 임대해서 하고 있어. 난 운이 좋은 편이야.” “그게 다 형이 착해서 그래요.” 


나는 다른 의미에서 선배는 언젠가 좋은 농사꾼이 되리라 믿었다. 언제나 밝고, 사람에게 따뜻하고 긍정적이다. 서울에서 단체 일을 할 때야 일이 치밀하지 못하다든지 투박하다든지 평가를 받을 수도 있었겠지만, 농촌 마을에서는 으뜸 품성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게는 없는 그런 자세가 늘 부러웠기 때문에 잘 기억하고 있다. 


“채소 하우스가 1년 내내 하는 일이라 바쁠 텐데, 뭐 이렇게까지 논농사도 하세요?” “예전부터 꼭 쌀농사를 하겠다고 생각했어. 논농사가 돈이 되어서가 아니라, 농사꾼이라면 쌀은 꼭 거두어야 한다고도 생각했고.” “형이 실제로 보니까, 논농사가 어떨 것 같아요?” “나야 남들이 안 짓는 논을 빌려서 시작했으니 더 힘들기는 하지. 논에는 우렁이를 넣을 계획이야. 들으니까 전라도 어디는 그 넓은 들녘 논에 해바라기를 심는다고 하더라구. 가공 공장부터 지어 주고, 전망 없는 쌀 대신 이것 해 보라는 식이지.” “형이 수익성을 계산해 보니까 솔직히 어때요?” “지역마다 다르겠지만 내 경우만 대충 계산해 보면, 논농사는 평당 3천원 조수입(투여된 비용을 제하기 전의 수입)이 된다고 보면, 거기에 철따라 농기계 들어가고 퇴비 들어가는 비용이 천 원쯤 들고, 주인에게 줄 도지가 3할이니 또 천 원쯤 들지. 그러면 평당 수입 천 원이라는 얘긴데, 가을까지 날씨 같은 변수가 없을 경우에만 나 같은 경우 1,200평에 최대 120만 원 수입이란 말이거든. 문제는 쌀값은 계속 떨어지고 있잖아.” “그러니 한다는 소리들이 규모화를 해라는 말이겠죠. 만 평 지으면 통계상으로는 천만 원 소득이 되는 거니까요. 그러면 쌀 전업농 1억 소득도 가능한 거겠죠. 흔히 말하는 논에 발 한 번 안 담구는 사장님 농부가 되라면서.” 


이 쓰디쓴 현실. 우리나라 농가 평균 농지가 3천 평이다. 그러니 쌀농사로 어떻게 살 수 있겠는가. 다들 정부 보조에 기대어 논에 밭작물 심고 하우스 짓는다. 그러면 칭찬 받는다. 그래야 몇 년에 한 번은 본전을 기대라도 할 수 있다. 쌀은 영원히 수익을 기대할 작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시 사람들은 투자 목적으로 논을 사고 슬금슬금 집 지을 대지로 전용한다. 그러면 칭송한다. 이게 대체 무슨 정신 나간 짓들이냐? 


“그런데요, 형 주변에서 도대체 왜 이런 마당에 농사를 시작하냐고 이야기 듣지 않아요? 농부들도 도시 사람들도 많이 물어볼 텐데, 그러면 뭐라고 대답해요?” “그거야 사람 따라서 그때 그때 다르지.” “형 속에 있는 대답은요?” “나는…… 농사가 하고 싶어. 그리고 농사만큼 명분이 뚜렷한 일이 없다고 생각해.” 


명분! 농사! 사전에서는 명분이란 ‘사람이 도덕적으로 지켜야 할 도리’라고 한다. 농사가 가장 명분이 뚜렷한 일이라고 말하는, 겁 없는 초보 농사꾼의 한마디가 내 가슴 속에 잔잔히 차오른다. 

 


출처: 작은책 7월호 
저자: 이진천_전국귀농운동본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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