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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4대 요리 (북경, 상해, 광둥, 사천)

by 엉뚱도마뱀 posted Jul 27,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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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북경요리

 

북경오리.jpeg

 

북경요리(京菜)는 북경이 원(元) · 명(明) · 청(淸) 3대의 수도였기에 바로 중국의 국가요리라 불리고 있다. 현재 북경요리는 수도인 북경을 중심으로 남쪽으로는 산동성, 서쪽으로는 태원까지의 요리를 포함한다. 한랭한 기후로 인해 추위에 견디기 위해 기름기를 많이 사용한 고칼로리 음식이 발달되어 있는데, 강한 화력을 이용한 튀김과 볶음요리가 일품이다.

 

지리적으로 문화와 역사의 중심지이기 때문에 궁중요리 등 고급요리가 발달했다. 면, 만두와 육류요리가 대표적이며, 궁정요리인 滿漢全度(만주, 중국, 몽골요리 총집결의 의미)는 적어도 30가지, 많으면 160가지 요리가 나오는 중국요리의 정수이다.

 

滿漢全度(만한취엔시)에서의 모든 요리는 한 세트씩 정해진 순서에 따라 나온다. 연회는 하루 두 차례씩 사흘에 걸쳐 진행되는 것이 일반적이고, 한 차례는 네 개의 세트로 구성되어 있으며 매 세트마다 주 요리 하나에 네 개의 보조 요리가 따랐다고 한다. 그러므로 한 차례에 20가지의 주 요리와 보조 요리가 나오게 되며 여기에 찬 음식(일종의 애피타이저), 건과류, 꿀 전병, 딤섬, 과일 등을 합치면 모두 3, 40가지가 되므로, 사흘에 걸친 연회에는 모두 180가지 이상의 음식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한 개의 주 요리에 네 개의 보조 요리로 이루어지는 것은 모든 별이 하나의 달을 에워싼다는 뜻에서 하나의 천자를 여러 신하가 모시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라 하니 요리 가짓수에까지 세심하게 배려되어 있는 왕권의 절대성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신하로서 만한취엔시에 초대받는다는 것은 여간한 기쁨이 아니었을 것이다. 자주 있는 일도 아니고 아무 때나 맛볼 수 있는 음식도 아닐 뿐더러 중국에서는 아무리 황제 앞이라 하여도 음식상을 두고 점잔을 빼거나 내숭을 떨지 않고 즐겁게 먹었기 때문이다.

 

연회장에 들어서면 겉옷을 벗고 얼굴을 씻은 다음 차를 마시며 간단한 딤섬을 먹는데 이것을 도봉이라고 한다. 도봉이 끝나면 다시 차를 마시고 호도 따위를 먹으면서 대화를 즐기는데 이때는 시를 읊조리기도 하고 주위에 걸린 그림을 감상하기도 한다. 곳곳에 온갖 과일과 볶은 은행알, 말린 여지, 연꽃 씨 따위가 놓여 있다. 이때를 대상이라고 한다.

 

손님들이 자리에 앉으면 먼저 과일을 썰어 올리고 찬고기 안주와 함께 술을 올리는데 술은 여러 종류가 준비되어 있어 각자 취향대로 마실 수 있지만 대개는 알코올 도수가 약하고 부드러운 사오싱지우, 그 중에서도 후아탸오를 마셨다고 한다. 이때는 손가락을 내밀며 숫자 맞추기 놀이를 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하여 네 번째 상까지 끝나면 다섯 번째 상이 나오는데 이번에는 밥, 죽, 탕이 중심이다. 이마저 끝나면 조그만 은접시에 이쑤시개, 빈랑나무 열매 따위가 나온다. 다시 한 번 얼굴과 손을 씻고 나면 연회가 끝나는데 밤에 걸쳐 하루 코스로 끝내기도 하고 하루 두 번씩 사흘에 걸쳐 진행하기도 했다.

 

3천 년 전인 주나라 시대의 기록에 여덟 가지 진귀한 요리가 소개되고 있다. 순오(고기즙을 뿌린 볶음밥의 한 가지), 포돈(통돼지 구이), 지(쇠고기절임), 간료(개 간과 창자 구이) 따위가 그것이다. 이 여덟 가지 요리가 더욱 발전하면서 먹을거리의 종류도 많아지고 조리방법도 다양해져 여러 갈래로 발전하였다. 이것을 날짐승, 해산물, 짐승류, 야채류에 따라 각각 여덟 가지로 나누면 다음과 같다.

 

우선 날짐승으로서 진귀한 여덟 가지는 붉은 제비, 백조, 비룡, 메추라기 따위이고, 해산물로서 진귀한 여덟 가지는 제비집, 상어 지느러미, 검은 해삼, 물고기 부레, 전복 따위이며, 짐승류로써 진귀한 여덟 가지는 낙타 혹, 곰 발바닥, 원숭이 골, 성성이 입술, 표범의 태반, 코뿔소 꼬리, 사슴 힘줄 등이다. 또한 야채류로서 진기한 여덟 가지에는 원숭이머리버섯, 흰참나무버섯, 죽순, 그물주름버섯, 표고버섯 따위가 있었다.

 

위에서 든 진귀한 재료도 그렇지만 만한취엔시란 오랜 세월에 걸쳐 온갖 재료를 써서 발전시킨 궁중요리가 청에 이르러 집대성된 것이므로 일반적인 것만 들더라도 양과 질로 우리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하다. 건륭이 섣달 그믐달(1784년) 신하들을 위해 베푼 만찬에서 매 상마다 준비하는 데 들어간 재료가 마침 기록으로 남아 있다. 이것을 보면, 돼지고기 65근, 오리 네 마리, 닭 열 마리, 돼지 허벅다리 3개, 멧돼지 25근, 거위 다섯 마리, 양고기 20근, 사슴고기 15근, 야생 닭 여섯 마리, 물고기 20근, 사슴꼬리 네 개 등등으로서 고기만 해도 3, 4백 근에 달했다. 제비집 정도는 기본에 속한다.

 

우리에게 다소 생소한 것만을 훑어봐도 사슴의 자궁, 사슴 고기포, 멧닭, 곰 발바닥, 백조, 너새, 두꺼비, 뱀의 간, 닭의 골, 잉어의 꼬리, 독수리 구이, 우유로 만드는 제호, 사슴의 입술 따위의 들짐승과 날짐승만 해도 수십 가지이고 흥안령, 산맥에서 나는 수호랑이의 고환으로 만든 칭탕후띤, 사불상의 머리로 만든 이핀치린미엔, 사슴의 눈알로 만든 밍위에자오진우헝 등등이 있다.

 

재료도 특이하지만 각각의 맛이 도대체 어떠한 것인지는 짐작도 가지 않는다. 그러나 그때그때 계절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달랐다. 만한취엔시의 상차림은 워낙 방대한 음식체계이므로 그 하나하나를 여기에 일일이 소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선 여기서는 한 끼에 나올 수 있는 하나의 예를 순서대로 진열함으로써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한다.

 

① 전채 : 간단한 해물 수프와 음료

 

② 과자 네 가지 : 살구씨 과자, 호두과자, 우유 흰 포도 과자, 바다 가재 튀김

 

③ 꿀 전병 네 가지 : 사과 꿀 전병, 은행 꿀 전병, 배 꿀 전병, 라이찌 꿀 전병

 

④ 간단한 찬 음식 네 가지 : 밤 연양갱, 아가위 연양갱, 참깨말이, 살구씨와 완두로 만든 부채 모양의 과자.

 

⑤ 찬 음식 : 북경식 오리구이와 달걀, 앵두를 이용하여 봉황새 모양을 낸 요리, 매운 쇠고기 볶음, 데쳐 볶은 민물고기, 삶은 생버섯, 박달나무 부채 모양의 삶은 오리발

 

⑥ 더운 음식 : 닭고기 가루를 넣은 죽순탕, 말린 패주와 달걀볶음, 버섯, 햄, 오이볶음, 산 새우와 돼지고기, 발채를 얹은 빵, 메추리알을 얹은 상어지느러미, 물고기 부레, 버섯, 메추리알을 이용한 닭찜, 산 새우와 닭고기의 볶음, 오리발, 닭고기 가루 삶음, 가늘게 썬 오리 가슴살과 숙주나물의 볶음, 복숭아씨와 닭고기 볶음, 옥수수가루 묻힌 닭다리 튀김

 

⑦ 간단한 더운 음식 두 가지 : 만두피 속에 달걀피 따위의 소를 넣고 찐 것, 만두피 속에 연양갱 따위를 넣고 주먹 모양으로 구워낸 것

 

⑧ 더운 음식 : 잘게 토막낸 쏘가리와 오이를 넣고 낙화생 기름으로 볶은 것, 물고기 살코기에 옥수수가루를 묻혀 낙화생 기름으로 볶은 것, 물고기 부레, 전복, 닭고기 가슴살, 용수채 삶은 것, 물고기 살코기, 햄, 버섯 따위를 달걀과 옥수수가루 반죽에 묻혀 돼지고기 기름으로 볶은 것, 다진 닭고기를 버섯에 얹어 삶은 것, 작은 빵에 다진 닭고기를 얹고 그 위에 비둘기 알을 장식하여 튀긴 것, 토끼고기를 달걀피로 싸서 튀긴 것, 토막 친 토끼고기를 땅콩, 고춧가루, 옥수수가루와 함께 볶은 것

 

⑨ 간단한 더운 음식 두 가지 : 밀가루 반죽에 콩으로 소를 넣고 판다곰 모양으로 빚어 구운 것, 밀가루 반죽을 발효시켜 고깃가루와 참깨를 얹어 둥글납작하게 구운 것

 

⑩ 죽 한 가지 : 찹쌀과 연밥으로 쑨 죽

 

⑪ 된장에 절여 만든 네 가지 디저트 : 무를 맵게 절인 것, 감을 맵게 절인 것, 여덟 가지 과일이나 야채를 절인 것, 여러 가지 야채를 절인 것

 

닭으로 태어나 가장 호강을 받는 것이 거지와 닭이라는 요리가 아닐까 싶다. 요리의 이름뿐만 아니라 겉모양으로도 연잎에 싸서 진흙을 발라 구워낸 것이 여간 고급스럽지가 않지만 그 내역을 알고 보면 출신은 그다지 자랑스럽지 못하다. 청나라 초기에 어떤 거지가 먹을 것을 얻지 못하고 배가 고파 어느 마을에서 닭 한 마리를 훔쳐다가 강가에서 잡아먹으려 했으나 변변한 도구나 양념도 없어 그저 내장이나 들어내고 구워 먹으려는 참이었다.

 

그런데 마침 멀리서 높은 분의 행차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놀란 거지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당황하다가 황급히 강가의 진흙을 닭에 발라 불 속에 던져두고 시치미를 떼고 있었다. 이윽고 행차가 지나간 뒤 불기운에 딱딱하게 굳어진 진흙 덩어리를 부수고 먹어보니 맛이 일품이었다. 이때 이를 근처에 사는 장씨 집의 하인이 지켜보다가 냄새가 그럴싸하므로 거지를 다그쳐 방법을 알아내 주인에게 보고를 하자 흥미를 느낀 주인은 요리사를 불러 좋은 재료를 넣고 한번 만들어보도록 지시했다.

 

여러 가지 재료를 더하고 연잎에 싸서 진흙을 발라 오랜 시간 구워내니 그 맛이 훌륭했다. 이름도 처음에는 거지의 닭을 뜻하는 규화자계라고 부르던 것을 오늘날에는 반의적인 방법으로 후꿰이지로 바꾸어 부르고 있으니 그 신분의 상승이 재미있다. 유명한 요리로는 북경오리구이, 케첩 대하, 해삼조림, 쇠고기 숙주볶음, 돼지고기 자장볶음 등이 있다.

 

 

2. 상해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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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요리(蘇菜)는 중국 중부지방의 대표적인 요리로써 남경(南京), 상해(上海), 양주(揚州), 소주(蘇州) 등지의 요리를 총칭한다. 양자강 유역에서 나오는 풍부한 해산물과 미곡, 따뜻한 기후를 바탕으로 이 지방의 특산물인 의유(醫油)를 사용하여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맛이 비교적 담백하고 기름기가 많으며 진하다.

 

소동파는 송나라 때의 정치가이자 위대한 문학가이고 또한 뛰어난 미식가였던 소식의 호이다. 오죽했으변 호를 노도, 즉 식탐 늙은이라고까지 하였겠는가. 그가 당쟁에 밀려 호북성 황주라는 곳으로 좌천된 적이 있었는데, 이때 친구에게서 동쪽의 밭을 빌려 경작을 하였기 때문에 동파거사라는 호를 가지게 되었다. 그는 우리의 금수강산에 대해 전해 듣고 “원컨대 고려에 태어나서 금강산을 한 번 보고 싶구나.”라는 시를 쓰기도 했던 인물이다. 정치가로서 또 문학가로서 중국 곳곳에 그의 발자취가 없는 곳이 없고 많은 음식이 그와의 인연을 말해주는 사연을 간작하고 있다.

 

이 요리도 그러하다. 그가 항주에서 태수를 지낼 때의 일이다. 아름다운 서호도 관리 소홀로 일부가 메워지고 잡초만 자라 폐허화되어 농사짓는 저수지 구실도 제대로 못하고 있었다. 이를 본 소동파는 백성들의 힘을 빌려 서호를 완벽하게 복구했다. 항주 사람들이 이를 고맙게 생각하여 감사한 마음을 나타내는 방법이 지극히 중국 사람들답다. 그들은 소동파가 돼지고기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돼지를 바쳤는데, 백성을 사랑하는 그가 혼자 챙길 리 만무해서 그는 이 돼지를 모두 요리시켜 같이 먹었고, 사람들이 그 맛에 탄복해 그의 호인 동파를 따 똥풔러우라 부르게 되었다.

 

이 똥풔러우는 들어가는 재료도 많지 않고 요리법도 비교적 간단하여 우리도 한번 시도해볼 만하다고 생각된다. 돼지고기 삼겹살 부분을 큼직하게 썰어, 끓는 물에 살짝 삶았다가 찬물에 씻은 다음 파, 술, 간장 따위를 함께 넣고 약한 불로 졸이다가 약간의 설탕과 뜨거운 물을 붓고 센 불로 끓이면 된다. 음식을 백성들과 함께 나누어 먹는 정겨운 모습이 마치 우리의 설렁탕의 유래와 어떤 면에서는 통하는 데가 있어 아름다운 이야기라 하겠다.

 

재산공개 과정을 거쳐 불신을 받게 된 우리네 정치인들과 고위 관리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이다. 하남의 개봉은 복송의 서울로 당시의 이름은 변랑 또는 변경이라 하였는데, 이곳은 황하의 잉어 볶음, 즉 리우위뻬이미엔이 예로부터 유명했다. 이것은 잉어를 볶은 것에 녹말가루와 밀가루를 섞어 만든 면과 설탕, 식초, 술, 국물 따위를 넣고 기름에 다시 볶은 것으로, 이것이 일반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청나라 말기였다.

 

외국의 연합 군대가 북경을 쳐들어와 서안으로 황급히 피신한 서태후가 이를 맛보고 매우 흡족하게 생각했다. 이때 옆에 서있던 허수아비 황제 광서가 서태후에게 옛날 변량의 진귀한 요리라고 소개하고서 서태후의 허락을 얻어 이 요리를 표창했으므로, 사람들은 임금의 상을 받은 요리라 하여 더욱 즐기게 되었다.

 

중국에서 손꼽히는 민물고기로는 앞에 말한 황하의 잉어, 송강의 농어 외에도 이락의 방어와 부춘 강의 시어가 있다. 시어는 준치의 일종으로 장강 하류에서 잡히며 비늘이 매우 아름다워 금린여왕(즉 비단처럼 구운 비늘을 지닌 물고기의 여왕이라는 뜻)이라고도 불리는데, 요리 후 이 비늘은 그냥 먹을 수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뿐만 아니라 시어는 이 세상에서 제일가는 물고기라고도 한다.

 

하기야 우리 속담에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있는 것을 보면 준치라는 생선이 민족의 다름을 떠나서 맛이 있긴 있는 모양이다. 이 시어는 이름에 때를 뜻하는 시자가 붙어 있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제철에 먹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황제에게 제때에 올리고자 하는 노력의 극치를 소개한다. 매년 초여름이면 시어는 바다에서 강으로 올라와 알을 낳게 되는데 이때의 맛을 최고로 치므로 그물에 걸려든 시어를 산 채로 황제에게 올리기 위해 3천 마리의 말과 수천 명의 사람을 동원한 1,300킬로미터의 번개수송작전이 개시된다. 매 15킬로미터마다 대형 수족관을 만들어두고 낮에는 기를 꽂고 밤에는 불을 피워 쉽게 찾도록 한다. 천 마리를 나르면 겨우 댓 마리가 살아남았고 그 중에서도 황제가 직접 먹게 되는 양은 불과 한두 마리였을 것인즉, 음식 사치도 이 정도가 되면 사치라고 할 수도 없다.

 

동한 초기에 여씨 성을 가진 사람이 이곳에 살았는데 그는 동한을 세운 광무제 유수와는 어려서 글을 같이 배운 사이였다. 유수가 나라를 세우고서 그를 보고 높은 자리를 맡아 도와달라 했지만 거절하고 부춘 강가에서 시어를 낚으며 세월을 보냈다고 한다. 이유인즉 부춘 강에서 낚시로 잡은 시어로 찜을 만들어 먹는 재미를 잊을 수가 없다는 것인데, 욕심이 없는 우리 조상들이 왕으로부터 벼슬을 맞아달라는 청을 받으면 늙은 부모 모시기와 병을 핑계로 삼았던 것에 비추어 보면 역시 그네들의 음식관의 한 모습을 알 수 있다.

 

청의 건륭 임금이 지금으로부터 300년쯤 전 소주를 찾았을 때 평민의 복장을 하고 이곳의 송학루라는 음식점을 찾은 적이 있었다. 잉어의 뼈를 발라내고 살로 꽃 모양을 만들어 달걀노른자를 얹고 양념을 하여 기름솥에 넣고 튀긴 다음 설탕, 식초, 소금을 뿌려 간을 맞추어낸 음식을 대하니 모양은 마치 다람쥐와 같은데 겉은 바삭바삭하고 안은 부드러우면서 달고 새콤한 맛이 그만이었다. 나중에 임금이 찾아와 먹은 것이 알려지면서 더욱 유명해졌으나 차츰 잉어 대신 쏘가리를 쓰게 되었다.

 

이것이 앞에서 이야기한 수양제의 네 가지 요리 중의 쏭수꿰이위와 같은지는 알 길이 없으나 지방도 같고 요리명도 같아 아무래도 같은 음식일 것으로 생각된다. 같은 건륭 대에 양주의 오랜 절에 문사라는 스님이 있었는데, 그는 특히 두부요리에 정통하여 연두부, 원추리, 목이버섯 따위를 재료로 하여 두부탕을 잘 만들었다.

 

한번은 건륭이 이를 맛보고서 그 즉시 궁중요리에 포함토록 했고 사람들은 스님의 이름을 따 문사두부라 이름지었다. 그러나 지금은 중국식 햄과 닭고기 국물까지 넣고 끓여내므로 옛 맛과는 사뭇 다를 것으로 생각된다. 새우, 게 등의 해산물요리와 쌀밥, 소흥주가 유명하며 유명한 요리로는 진주완자, 게볶음, 생선찜, 사자두, 삼선볶음국수 등이 있다.

 

 

3. 광동요리

 

광동요리.jpeg

 

광동요리는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중국요리로 광주(廣州), 조주(潮州), 동강(東江)지방의 요리를 말한다. 16세기 이후 외국 선교사와 상인들의 왕래가 빈번하였기 때문에 전통요리에 서양요리법이 결합하여 독특한 특성을 지닌다. 광동요리는 조미료를 중시하며 향기롭고, 개운하고, 부드럽고, 미끈거리는 것이 특징이며, 특히 해산물요리에 능하며 맛이 담백하다.

 

또한 광동요리는 기름을 많이 사용하며 맛이 진하고, 소박한 향토색(鄕土色)을 띄는 것이 특징이다. 전세계 차이나타운에서 먹을 수 있는 요리가 바로 이 요리이며 약간 달짝지근하면서 깔끔한 맛을 내며, 탕수육, 팔보채 등 우리에게도 친숙한 요리가 많다. 또한 중국에서 식문화가 가장 발달한 지역으로 모든 생물을 원료로 사용한다.

 

광동 사람들이 참새를 먹게 된 것은 꽤 오래 전으로, 광주에서 발굴된 서한 시대의 남월왕 묘에서는 200여 마리분의 참새 뼈가 출토되었다고 한다. 작은 참새의 일종으로 찬바람이 불면 북쪽으로부터 날아와 논의 이삭을 먹어 치우기 때문에 화화작이라고도 한다. 우리는 참새를 불에 구워 소금에 찍어 먹지만, 그들은 털을 벗기고 꽁무니를 통해 내장을 솜씨 좋게 빼내고 기름에 반쯤 튀긴 다음 약한 불에 쪄서 먹는다. 털을 벗긴 상태에서 참새를 통째로 한 입에 넣으면 뼈와 함께 아삭아삭 씹히는 맛이 과연 광동요리의 3총사라고 하는 이유를 알게 해준다.

 

광동 지방에서 요리상에 돼지구이 요리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특히 새끼 돼지 통구이는 빠질 수 없는 필수 메뉴다. 통돼지 구이는 광둥성의 주강 삼각지 일대가 유명한데, 잘 익은 돼지 겉색깔이 황금빛으로 아름다워 금돼지라고 하며, 어미 돼지는 대금저, 새끼 돼지는 유저라고 한다. 유저는 우리의 애저에 해당하는 말이다.

 

그러나 음식점의 메뉴에서는 보통 췌이피루주로 올라 있는데 이는 바싹 구워 아삭아삭 씹히는 맛에 착안하여 붙인 이름이다. 그러나 이 요리가 광동 지방에서는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갓 결혼한 여성으로서는 일생일대의 명예가 걸린 처녀 인정증서와 같은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광동 지방에서는 첫날밤에 친정집에서 준비해준 하얀 천을 잠자기 깔개로 사용했다. 다음날 아침이 되면 이 천을 벗겨 처마 밑에 내거는데, 이 천이 붉게 물들어 있으면 동네 사람들은 새댁이 처녀라면서 축하를 하고, 시댁에서는 며느리가 친정에 가져오면 친정에서는 그 기쁨을 친지들과 나누었다고 한다. 이 요리는 모든 중국인들이 사랑하는 저우언라이와도 관계가 있다.

 

《역사의 연구(In Search of History)》라는 책을 쓴 화이트(T. H. White)는 돼지고기를 먹는 것은 신을 모독하는 행위라고 생각하는 유대인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저우 총리가 그를 초청하여 만찬을 베풀었고, 식탁의 가운데에는 화려한 황금빛 색깔을 자랑하는 췌이피루주가 놓여졌다. 저우언라이는 중국인의 식사 예법에 따라 고기를 집어주면서 권했지만, 유대인인 화이트가 진땀을 흘리며 사양하다보니 분위기가 식어버렸다.

 

이때 저우언라이가 재치를 발휘했다. “괜찮습니다. 중국에서는 이것이 돼지고기가 아니고 오리고기입니다.” 참석자들은 모두 크게 웃었고, 화이트도 용기를 내어 입에 집어넣었다. 뒷날 그는 그때를 회상하면서 교리에 어긋난 행위에 대하여 하나님에게 용서를 빌었지만, 뛰어난 맛에는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노라고 실토했다고 한다.

 

통돼지 구이는 이미 3천 년 전 주나라 때의 기록에도 여덟 가지 진기한 요리의 하나로 들어 있고, 청나라의 공식 궁중요리인 만한취엔시에서도 으뜸이었다 한다. 지금도 웬만한 연회를 할 경우 테이블마다 네 다리를 벌리고 납작 엎드린 새끼돼지를 한 마리씩 올리게 마련이다.

 

곰 발바닥은 지금으로부터 3천여 년 전인 은나라 때부터 이미 먹기 시작한 것으로 은의 마지막 임금인 주는 옥으로 만든 잔에 좋은 술을 부어 마시고, 안주로는 곰 발바닥 요리를 즐겨 상아 젓가락으로 이것을 집어먹었다고 한다. 이어서 주나라 때에는 앞에서 소개한 여덟 가지 진귀한 요리에 포함되어 더욱 사랑을 받게 되었다.

 

곰 발바닥은 우리가 존경하는 맹자와도 관계가 있다. 언젠가 맹자는 말했다. “물고기도 먹고 싶고 곰 발바닥도 먹고 싶으나 두 가지를 모두 먹을 수 없을 때에는 물고기보다는 곰 발바닥을 택할 것이다. 목숨도 아깝지만 의와 예를 지키고 싶은데 모두를 바랄 수 없다면 목숨을 버리고 의와 예를 지켜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맹자의 불가득겸, 즉 두 가지를 한꺼번에 얻을 수 없다는 가르침이니, 이것을 겉에 나타난 대로만 해석한다면 근엄한 맹자도 곰 발바닥 요리의 맛을 인정했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곰 발바닥은 중국에서도 장백산(백두산의 중국식 이름)의 것을 최고로 치는데 이곳의 곰을 검은눈 곰 또는 검은 곰이라고 부른다. 장백산에는 좋은 꿀이 나는데 이 곰은 벌의 침도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두터운 앞발을 휘둘러 벌집을 부수고 꿀을 핥아먹기를 즐긴다. 그래서 네 개의 발바닥 중에서도 꿀을 핥아먹는 데 주로 쓰는 오른쪽 앞발이 가장 좋고 그 다음은 왼쪽 앞발이라고 한다. 딛고 서거나 몸의 중심을 잡는 데 쓰는 뒷발은 단단하고 질겨 제 맛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갓 잡은 곰의 발에 물기가 묻으면 금방 상하므로 종이나 헝겊으로 핏물을 잘 닦아낸 다음, 커다란 항아리에 석회를 깔고 다시 그 위에 볶은 쌀을 뿌리고서 곰 발바닥을 놓는다. 다시 항아리의 나머지 공간을 볶은 쌀로 가득 채우고 뚜껑을 석회로 봉하여 한두 해 저장해 두면 변질이 안 되면서 잘 마른다고 한다. 민간에서는 이렇게 번잡하게 가공하여 먹을 수 없기 때문에 약식으로 해 먹는다. 곰 발바닥에 황토 진흙을 발라 불 속에 넣고 구운 다음 흙덩어리를 부수면 가죽과 털은 단단하게 굳은 진흙에 묻어 떨어지고 살과 뼈의 덩어리만 남게 되는데 이것을 양념에 찍어 먹는다.

 

그러나 곰 발바닥이 어디 예사 먹을거리인가. 이것을 제대로 조리하자면 먼저 앞에서와 같이 말린 발바닥을 데치듯 약간 삶은 다음, 털을 뽑고 꿀을 발라 다시 약한 불에 한 시간쯤 삶다가 꺼내어 꿀은 씻어내고 닭고기 국물에 다른 재료를 섞어 세 시간쯤 뭉근 불로 졸인다. 완전히 익지 않은 상태에서 다시 꺼내어 뼈를 발라내고 또 다른 재료를 넣고 함께 쪄내면 바로 저 유명한 곰 발바닥 요리가 완성되는 것이다. 여기서 꿀을 발라서 삶는 것은 꿀이 발바닥의 냄새를 제거해 주기도 하거니와 속살이 골고루 익도록 도와주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라 한다.

 

우리는 <인디아나 존스>에서 이미 눈으로 원숭이 골 요리를 맛보았다. 그러나 중국요리에서의 원숭이 골 요리는 영화 속에서보다 잔혹의 정도가 훨씬 심하다. 영화 속에서는 원숭이 머리를 접시에 담아냈지만, 중국 사람들은 산 채로 묶어둔 원숭이의 골을 파먹는다는 점이 다른 것이다. 원숭이 골을 먹으려면 먼저 구멍 뚫린 탁자를 준비해야 한다. 이 구멍은 원숭이의 머리가 겨우 빠져 나올 정도의 크기다.

 

살아 있는 원숭이를 끌고와 팔다리를 묶고 탁자의 밑에 앉혀 머리 윗부분이 탁자의 구멍으로 삐죽 나오게 만든다. 준비가 되면 은으로 만든 망치로 원숭이의 두개골(이 부분의 털은 미리 깎아둔다)을 부순 다음 은으로 만든 칼로 골을 파서 은수저로 떠먹는다. 밑에서는 원숭이가 단말마의 고통을 토하는데 김이 모락모락 나는 원숭이의 따끈한 골이 무슨 맛인지는 필자도 알 길이 없다. 다만 우리도 먹는 소의 골이나 등골과 비슷하지 않을까 유추해볼 수 있을 뿐이다.

 

아프리카에서 발견된 무서운 전염병으로 에볼라 바이러스가 있다. 발병하고 며칠이 지나면 몸의 모든 구멍으로 피가 나고 내장이 녹으면서 죽는다는 무시무시한 병이다. 그런데 이 병은 자이르의 명물 요리인 원숭이 구이로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원숭이를 통째로 구워서 살을 발라먹는 것인데 덜 익은 부분에 남아 있던 바이러스가 감염되었다는 것이다. 하기는 에이즈도 아프리카 원숭이로부터 시작됐다는 설이 있는 것으로 보면 인간에게 치명적인 현대의 모든 천형은 하늘이 인간을 닮은 원숭이를 통해 보내는 경고같이 생각되기도 한다.

 

칠기 쟁반에 밀가루로 빚은 꽃 모양의 음식이 조그만 꿀 종지와 함께 나오면 비위가 약한 사람들은 일단 음식을 자세히 살펴야 한다. 걸쭉한 수프와 함께 국화잎과 콘칩 조각이 담긴 접시가 나오면 뱀 수프이듯이 이것은 꽃도 아니고 만두도 아닌 새끼 쥐일 수도 있는 것이다. 태어난 지 이틀이 지나지 않은 새끼 쥐는 아직 털도 안 나고 눈도 뜨지 못하여 제자리에서 꼬물대기만 하는데 색깔이 하얗고 살은 솜처럼 부드럽다. 이 새끼 쥐를 젓가락으로 집어 꿀을 듬뿍 묻힌 다음 한 입에 털어 넣고 우물우물 씹어 먹는 것이다.

 

어찌보면 원숭이 골을 파먹는 것보다 더 잔인한 일이 아닌가 싶지만 이것을 먹은 역사는 꽤 오래되어 송나라의 문장가 소동파도 즐겼다고 하니 그들의 다양한 입맛에는 두 손을 안 들 수가 없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들만 흉볼 일도 아닐 성싶다. 왜냐하면 비록 산 채로 먹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우리에게도 새끼 송아지를 송치라며 먹고, 새끼 돼지를 애저라며 즐기는 음식문화가 있으니 말이다. 광주 또식당의 애저찜이나 전북 진안의 진안관에서 내는 삶은 애저가 바로 이런 부류에 속하는 것들이다.

 

이점은 다른 나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달팽이며 구더기, 바퀴벌레 따위의 혐오식품을 당당한 요리의 범위에 넣고 있는 나라가 적지 않다. 그런데도 소위 선진국들은 우리나라의 보신탕을 두고 갖은 비난과 압력으로 우리를 괴롭힌다. 남의 문화를 자기의 잣대로 재로 헐뜯는 것이 오히려 비문화적임을 왜 모를까.

 

만한취엔시에도 나오는 지네는 반드시 다섯 자 길이로 제한했으며 이를 넘거나 모자란 것은 쓰지 않았다고 한다. 상에 올릴 때는 붉은 봉투에 넣고 봉한 다음 한 사람 앞에 두 봉지씩 올렸는데, 사람을 해칠 수가 있으므로 커다란 도자기 그릇에 담아내었으며 지네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이 거든다고 한다. 손님이 먹기를 원하면 그 사람은 지네가 들어 있는 봉투를 겉에서 손가락을 이리저리 움직여 지네의 머리와 꼬리를 떼어내고 봉투에 구멍을 뚫어 그곳으로 지내의 살집만 끄집어내는데 마치 깐 새우와 같은 모양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신경통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고양이를 삶아 약으로 먹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질병으로 고통 당하고 있는 환자들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중국인들에게는 고양이도 수많은 먹을거리 중의 하나일 뿐이다.

 

실제로 중국 남부지방의 재래시장에 나가면 고기를 파는 가게 처마에 하얗게 껍질을 벗긴 고양이가 갈고리에 꿰어 대롱대롱 매달린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그 옆에는 희귀동물인 천산갑도 있고 오소리 등 온갖 야생동물이 있어 시장이 아니라 동물원 같은 느낌을 준다. 사슴의 새끼가 들어 있는 자궁도 살 수 있다. 하기는 덩샤오핑이 이미 고양이를 이용하여 그의 사상을 강조한 적이 있어 중국인들로서는 이래저래 고양이에 대하여 낯설지 않은 이미지를 갖고 있다.

 

1962년 마오쩌둥의 무리한 약진 운동이 실패로 끝나고 국가경제가 휘청거리고 있을 때, 덩샤오핑은 당 간부들에게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를 잘 잡는 고양이가 좋은 고양이다.”라는 소위 흑묘백묘론을 설파하여 노선의 수정을 주장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천산갑이든 고양이든 맛이 있는 것이 좋은 음식이라는 결론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고양이를 넣고 끓인 요리 중에서는 뭐니뭐니 해도 뱀과 같이 조리한 롱후따훼이가 유명하다.

 

언젠가 해외 뉴스에 해괴한 이야기가 실린 적이 있다. 중국의 어느 시골에 유명한 만두집이 있었는데 맛이 별나게 좋아 장사가 잘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집의 만두 속으로 사람고기가 사용되고 있음이 밝혀져 큰 충격을 주었던 것이다. 그 집주인은 화장터의 인부를 매수하여 화장터에 실려온 시신의 허벅지 살을 정기적으로 공급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사람고기를 먹는 습관은 사실 중국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다.

 

전국 시대에 겸애설을 주장한 묵자가 남긴 글에 보면 초나라 남쪽에는 첫아들을 잡아먹는 습관이 있다 했고, 송나라 때의 주희는 《초사집주》라는 책에서 춘추전국시대에 지금의 호남성 북쪽에 사람을 잡아서 절여두고 먹는 습속이 있음을 밝혔다. 그러나 전쟁과 기아에 살기 위해서 남을 잡아먹는 현상도 생겼다. 반고의 《한서》에는 굶주린 장안 사람들이 이웃을 잡아먹어 수십만 명이 희생되었다고 했고, 근세의 청나라 때에도 태안이라는 곳에서 기근으로 마을 사람들끼리 잡아먹기 위해 싸움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남북조시대에 양의 후경이라는 자는 남경을 난폭하게 다스리다 왕승변에게 잡혀 죽자, 백성들이 그의 처와 함께 살은 먹어 없애고 뼈는 태워 재로 만들어 술에 넣고 마셨다고 한다. 수나라 말기 도적 주찬은 식량이 떨어지면 어린아이들과 여자를 요리해서 부하들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본인은 특히 아기를 찐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당나라 때도 난을 일으킨 황소의 군대는 절구를 수백 개 늘어놓고 백성들을 짓찧어 먹었다고 한다. 송나라의 왕계훈은 낙양을 다스릴 때 시녀들이 마음에 안 들면 죽여서 먹어버리고 뼈는 항아리에 모아 두었다가 다 차면 들에 버렸다고 한다.

 

금나라의 장국 아호대는 부하들과 그 부인들을 초청하여 연회를 베푼 적이 있었다. 그 중에 한 장군의 아내가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하자 대신 고기만두를 주었는데 그녀가 맛있다고 하자 아호대는 “돼지고기는 싫어하더니 사람고기는 좋아하는군.”이라며 웃었다고 한다. 중국 근대소설의 아버지 루쉰의 대표작에는 「광안일기」가 있다. 이 소설은 사람을 잡아먹는 사회상을 고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도 역사상 수많은 전란과 기근으로 고통을 겪었지만 중국처럼 사람을 잡아먹는 참상이 보편화되지는 않았다. 풀뿌리를 캐먹고 나무껍질을 벗겨 먹으면서도 말이다. 사람고기를 먹는 데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앞에 이야기한 바와 같이 먹을 것이 없어 나의 생존을 위하여 남을 잡아먹는 경우다. 태평양 전쟁 때 일본군이 인육을 먹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것도 같은 차원의 이야기다.

 

둘째, 식도락을 위한 경우다. 춘추시대의 제나라 환공이 미식가였음은 앞에서도 밝혔다. 어느 날 환공은 주방장 역아에게 그가 먹어보지 못한 좋은 음식이 없냐고 물었다. 그러나 역아로서도 더 이상 별난 음식을 마련할 재간이 없었다. 역아로부터 사람고기가 좋다는 대답을 들은 환공이 관심을 가지자 역아는 당장 자신의 아들을 잡아 환공에게 바쳤다. 환공은 이를 맛있게 먹고 역아에게 큰 상을 내렸다고 한다.

 

인육은 상육이라고 하여 많은 사람들이 요리법을 연구했다고 한다. 명나라 때 이시진이 쓴 《본초강목》은 의학서에서 인체의 부위별 약효에 대해서까지 언급하고 있다. 식인문화를 위한 의학적 근거이기도 하고 인육 요리의 길잡이이기도 한 셈이다.

 

중국 고대소설에서도 인육을 사용하는 음식점 이야기는 수없이 많다. 《수호전》에는 인육으로 만두 만드는 사람이 주인공과 엑스트라를 가리지 않고 다수 등장한다. 한 예로 호랑이를 맨손으로 때려잡은 무송이 형의 원수를 갚기 위해 반금련을 죽이고 그 죄로 귀양을 갈 때의 일이다. 주막집에서 몸을 쉬는데 그 집은 약 탄 술을 먹여 사람을 죽인 다음, 돈은 모두 빼앗고 살은 저며 만두 속으로 쓰는 곳이었다.

 

무송은 이것을 눈치채고 거짓으로 쓰러져 있다가 무송 일행을 죽이려는 주인 내외를 혼내주었다. 그 주인이 비범한 인물임을 알게 된 무송은 그들을 용서하고 의형제를 맺게 되는데 그가 바로 장청으로서 나중에 부부가 양산박에 합류하여 108호걸 명단에 들게 되었다. 이들만 아니고 《수호전》에는 이곳저곳에 인육 만두 이야기가 실려 있다. 상상 속에서 씌어진 것이 아니고 송나라시대의 사회상을 그대로 반영했음에 유의해야 한다.

 

셋째, 형벌을 위한 것이다. 중국에서 사람을 형벌로서 죽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참혹한 것은 사람을 조리하는 것이라 하겠다. 공자의 제자 중에 자로가 있었다. 공자에게도 대들 정도로 강직하고 의협심이 많은 인물이었다. 그는 위나라에서 벼슬을 하게 되었는데 임금의 자리를 놓고 벌어진 싸움에서 의를 지키다 죽었다. 이때 무사가 그를 쳐서 머리에 쓴 관이 끈이 떨어지자 자로는 “군자는 죽어도 관을 벗지 않는다.”고 하며 끈을 고쳐 매고서 죽음을 맞았다.

 

공자가 멀리서 위나라에 난리가 일어났다고 하자 “아아, 자로는 죽을 것이다.”하면서 한탄을 할 정도로 그는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인물이었기에 쿠데타를 두고 비난하는 그에게 올 것은 죽음뿐이었던 것이다. 그에게는 포를 뜨는 형벌이 주어졌다. 이를 전해들은 공자는 집안의 고기포를 모두 없애고 평생 고기포로 만든 음식을 먹지 않았다고 한다.

 

중국 최초의 폭군은 은나라의 주임금이다. 그는 죄인을 불에 태워 죽이는 것을 낙으로 삼았는데 한 번은 죄인을 죽여 장을 담가 부하들에게 먹도록 했다. 신하 중의 창이 이를 말리자 그를 감옥에 가두었고 창의 아들이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미녀와 보물을 가지고 찾아오자 주왕은 그를 잡아 장을 담가 창에게 보냈다. 주왕은 차마 아들의 고기는 먹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트집을 잡으려 했던 것인데 창은 이를 알면서도 태연히 먹었다고 한다.

 

얼마 뒤 창의 부하들이 적극 나서 뇌물을 써 창은 구출되었다. 창은 자신의 영토를 넓히며 점차 영향력을 키우다가 죽었으나 다른 아들 ‘발’이 무왕이 되어 마침내 은나라를 쳐서 주왕조를 열었다. 결국 창은 자식의 고기를 먹는 고통을 참고 견디어 마침내 원수를 갚고 새로운 왕조를 여는 기틀을 마련했던 것이다. 창은 그 뒤 문왕으로 추존되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즐기는 중국요리 중의 하나가 탕수육이다. 물론 당추러우라는 이름의 탕수육도 있기는 하나 대개는 꼬로욕으로 불린다. 청나라 말기에 광주를 외국에 개방했을 때, 외국인들은 중국요리 중에서 당추파이쿠를 가장 좋아했다 한다. 이것은 달고 새콤하게 요리한 돼지갈비인데 젓가락질이 서툰 그들을 위해 돼지갈비의 살만을 발라내어 술을 붓고 달걀과 전분을 섞어 설탕, 식초, 간수 따위로 간을 맞추어 바삭하게 튀겨낸 것이다.

 

혐오요리(고양이, 파충류 등)의 중심이며, 상어지느러미, 비둘기, 광동집오리 요리 등이 대표적이다. 그 외에도 레몬닭고기조림, 새우 속 찐만두, 동강두부, 돼지갈비 케첩조림, 닭살 모듬볶음 등이 있으며 차, 죽, 디엔신(얌차)이라 부르는 스낵 등도 추천할 만하다.

 

 

4. 사천요리

 

사천요리.jpeg

 

사천 요리는 일반적으로 향이 강한 산초나무나 매운 고추 등의 향신료를 많이 넣어, 향이 강하고, 매운 중화요리로 알려져 있다. 사천 성 청두를 본고장으로 하며, 중국에서의 일반적인 호칭은 촨차이(川菜)라고 한다. 사천 요리는 중국 내에서도 유명하며 정통 사천요리를 의미하는 정종천미(正宗川味)라고 붙여둔 간판도 눈에 자주 뛴다.

 

톡 쏘는 얼얼한 매운 맛을 의미하는 마라(麻辣)을 맛의 중심으로 하고 있고, 중국의 다른 지방 요리와 비교해도 향신료를 많이 쓰는 편이다. 이것은 사천(쓰촨) 성이나 충칭의 여름에 습도가 높고, 겨울과 기온 차가 큰 기후와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다. 내륙지방이라는 지역성을 반영해 해산물 재료는 적게 들어가고, 야채나 닭, 오리고기, 곡류를 주 재료로 하고 있지만 최근에는 유통망이 발달해서 음식 재료로 해산물도 서서히 받아들이고 있다.

 

 

현지 사람들은 “사천(쓰촨)은 분지 지형에 습기가 많아 매운 것을 먹고 땀을 흘려 건강을 유지한다.”라고 말한다. 매운 것을 많이 사용하는 인도 요리나 타이 요리는 모두 고온다습한 지형과 관련이 있다.

 

사천요리(川菜)는 내륙요리의 진수로 중국 서부지역의 요리를 대표하며 양자강 상류의 산악지대인 사천(四川), 운남(雲南), 귀주(貴州)지방의 요리를 말한다. 산악지대이기 때문에 향신료, 소금절이, 건조시킨 저장식품이 발달했다. 조리방법에서는 살짝 볶거나 부치고, 천소(千燒, 맛술로 맛을 내고 그 국물이 없어질 때까지 약한 불로 조리는 요리)하는 것이 특징이다.

 

조미료의 사용에서 고춧가루, 후추가루, 생강 등을 애용하기에 얼얼하고, 맵고 강한 향기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고추 등 향신료를 사용해 고온에 익히고 맵고 강한 맛을 내어 한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요리다. 두부와 돼지고기 요리가 유명하며 삼겹살야채볶음, 마파두부, 두반어, 삼선 누룽지탕, 닭고기조림 등이 유명한 요리다.

 

• 마파두부(麻婆豆腐) : 청나라 때 성도 북문 거리에 개업한 진흥성반포(陳興盛飯鋪)에서 처음으로 개발한 두부 요리다. 이 요리를 만든 노파가 곰보였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이 '진씨 곰보 할머니(陳麻婆)'라고 부르던 것이 요리의 이름으로 굳어버린 것이다. 뜨끈뜨끈하고 얼얼하며 매운 맛이 일품이다.

 

• 담담면(擔擔麵) : 1950∼60년대 우리나라에서도 밤중에 골목길에서 '찹쌀떡이나 메밀묵!' 하고 외치는 행상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예전 성도에서는 이처럼 국수를 만들어 골목길로 메고 다니면서 팔았던 모양이다. 요즘은 간단한 먹을거리를 파는 음식점에서 맛볼 수 있다.

 

• 화과(火鍋) : 샤부샤부처럼 큰 양푼에 담긴 육수에 여러 가지 야채를 넣고 끓이면서 각종 육류나 버섯 따위를 데친 뒤 양념장에 찍어 먹는 음식이다. 중국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저렴한 요리지만 특히 사천이나 중경 지방이 유명하다. '하늘에 날아다니는 것은 비행기를 제외하고, 땅 위에서 다리가 긴 것은 의자를 빼고는 모두 이 요리의 재료가 될 수 있다.'고 할 만큼 재료가 다양한 것이 특징이다. 요즘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 양푼에 한 쪽에는 맵고 얼얼한 홍탕(紅湯)을, 나머지 한 쪽에는 맵지 않은 청탕(淸湯)을 담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역시 화과의 참맛은 홍탕에서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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