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탄젤로 성, 하드리아누스의 영묘(하드리아네움)

by digipine posted Nov 04,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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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리아네움은 130년 하드리아누스가 직접 설계 및 의뢰한 자신의 개인 영묘로, 1년 뒤, 하드리아누스 사후에 안토니누스 피우스가 완성한 원형 건축물이다. 하드리아누스가 추진한 또 하나의 프로젝트, 즉 하드리아네움으로 이어지는 '아엘리우스 다리'는 136년에 공사가 시작되었다. 270~275년, 아우렐리아누스 황제는 하드리아누스의 영묘를 에워싸는 성채를 올리고 그의 이름을 붙였다. 6세기에 산탄젤로 성은 영묘로서의 기능은 사라지고 교황의 성채라는 새로운 기능을 갖게 되었다. 13세기에 교황 니콜라스 3세는 환형 성벽 위에 파세토(이탈리아어로 '복도'라는 뜻)를 건축함으로써 현재의 산탄젤로 성(천사의 성)과 바티칸 시티를 연결하였다. 이 비상용 '비밀' 탈출로는 바티칸이 포위될 때마다 수많은 고위 성직자들의 목숨을 구했다.
 
성의 지붕 테라스에서 도시의 장대한 전경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은 대천사 미카엘이다. 6세기에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가 흑사병을 진압하는 천사의 환영을 본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나선형 진입로는 성의 중앙부에 있는 황제의 묘실로 향하며, 넓은 층계는 탁 트인 거대한 노천 정원과 위층의 아파트로 이어진다. 어둡고 축축한 아래층의 비좁은 방들과, 바람이 잘 통하는 세련된 위층 방과 주랑 사이의 강렬한 대비는 관광객들을 깜짝 놀라게 한다. 심판의 방, 아폴로의 방, 율리우스 2세의 로지아, 보고(寶庫), 클레멘트 7세의 아파트, 그리고 트롱프뢰유 프레스코로 장식된 살라 파올리나도 놓치면 안 될 볼거리이다. 산탄젤로 성은 전쟁과 평화가 반복되던 시기, 산 자와 죽은 자 모두를 충실하게 보호함으로써 서양 문명의 진원지로서의 로마의 성장과 발전에 중요한 공헌을 한 건물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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