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은 콘스탄티누스 1세의 즉위 10년을 기념하여 원로원이 세운 것이다. 콘스탄티누스가 312년 로마에 진군할 때, 대낮에 십자가와 "이것으로 이겨라"라는 환상을 전군(全軍)과 함께 보고 막센티우스군(軍)을 티베르 강 근처에서 격파했는데, 황제의 그때 싸움 장면이 이 문의 부조(浮彫)에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이 사건은 기독교 공인과 제국의 통일에 획기적인 것이었다.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서기312년에 밀비안다리 전투에서 그의 라이벌이었던 막센티우스를 물리친 기념으로 세운 것으로 파리의 개선문도 이것을 본떠 지어진 것이고 당시 전쟁에서 이긴 장군들은 반드시 이 문을 통과해 황제에게 승전을 보고했다고 한다.
문은 흰 대리석으로 되어 있고, 세 개의 통로가 있으며, 일부는 다른 건축에서 옮긴 것이다. 로마에 있다. 콘스탄티노플에는 대신에 '선량한 양치기의 상(像)'이 놓여 있다.
옛 기념물에 남아 있던 부분이 통합된, 312년에 세워진 개선문
이 웅장한 개선문은 로마의 손꼽히는 명소 중 하나로, 로마 황제들이 축하 행렬을 벌일 때 택했던 오래된 길인 '비아 트리움팔리스'에 서 있는 주요 유적이다. 이 개선문은 티투스 개선문과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개선문과 더불어, 고전기 로마 시대부터 온전한 상태로 살아남은 세 개의 로마 개선문에 속한다. 이는 최초로 기독교를 받아들인 로마 황제라 알려지는 콘스탄티누스 1세가 로마 바로 외부에서 벌어진 '밀비우스 다리의 전투'(312)에서 거둔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건설되었다. 이 승리로 인해 그는 서로마 제국의 단일한 지배자가 되었으며 기독교 세력이 성장하는 데에 중요한 기점이 되었다.
이 인상적인 건축물의 높이 21m, 너비 25.7m, 두께 7.4m이다. 개선문의 아래쪽은 콘스탄티누스가 전리품들과 더불어 지나갔을 육중한 중앙 아치와 사이드 아치, 대리석으로 된 지지 교각, 코린트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티카 양식으로 된 꼭대기 부분은, 황제가 막센티우스와 벌인 전투와 그 승리를 표시하는 여러 장면, 인물, 글귀가 조각되어 있는 대리석 패널에 둘러싸여 있다.
콘스탄티누스의 개선문은 재치 있는 재활용을 보여 주는 매우 오래된 본보기라 할 수 있는데,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시대에 세워졌던 옛 기념물로부터 장식 부분을 떼어오거나 개조해서 사용했기 때문이다. 대체 얼마나 많은 재료가 재사용되었으며 그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어쩌면 단순히 개선문에 나타나 있는 사건의 하나이기도 한 밀비우스 다리 전투에서 거둔 승리에 뒤따라 급하게 제작하느라 그랬을지도 모른다. 또한 의도적으로 콘스탄티누스를 많은 존경을 받았던 초기 황제들과 동일시하는 것이 그 목적이었을지도 모른다. 1700년대에 대규모 복구 작업이 행해졌으며, 현대로 와서는 1990년대 후반에 상당한 양의 작업이 마무리되었다